신사임당,권필,양사언 명필 초서

금수강산 1 3,835 2015.09.30 13:56

 

 

申師任堂 / 權韋+畢 / 楊士彦 名筆 草書

 

 

 



신사임당초서 시 3편

 

 

 

春춘

此意靜無事차의정무사
내 가슴 속에 생각은 고요하고 아무 일도 없어
閉門風景遲 폐문풍경지
문 닫고 방안에 앉았으니 봄 풍경 더디게 느껴지네
柳條將白髮유조장백발
버드나무 가지는 백발처럼 흰 꽃가루 날려보내고
相對共垂絲상대공수사
서로 마주서 함께 실가지를 아래로 늘어트린다.

夏하

江南雨初歇강남우초헐
저 멀리 강, 남으로 비 막 그쳐 하늘 개이니
山晴雲猶濕산청운유습
산은 맑고 깨끗하지만 구름은 아직 비를 먹음 었구나
未可動歸橈미가동귀요
배를 돌려 굳이 노를 저을 필요가 없는 것은
前溪風正急전계풍정급
앞 냇물에서 바람이 급하게 불어오기 때문이다

秋추

輦路江風暗배로강풍암
수레 가는 길 연도 강가에 단풍은 어둠에 잠기고.
寒潮野草春한조야초춘
차갑게 밀려오는 강바람에도 들풀은 봄처럼 푸르네.
傷心庾開府상심유개부
얘 타는 마음은 남북조시인 유개부(庾信) 같은데
老作北朝臣노작북조신
이 맘, "유신 늙어 북조 신하 된 것"처럼 슬퍼하는 심정이리라.

이 글은 남북조시대 때 庾信유신(513-581)이란 사람의 四六騈儷文

을 申師任堂신사임당께서 보시고 지은 五言絶句體오언절구체 시이다


庾信유신은 南朝남조 양 나라에서 벼슬하다가 양 나라가 망한 뒤에 北朝북조인 위나라와 주나라로 옮겨 다니며 벼슬하여 개부의동삼사라는 직위를 얻었으므로 유개부라고 칭하기도 했다


위에 초서로 써 내려간 난숙한 서체는 사임당이 고향을 그리는

정이 묻어있어 애상적인 느낌을 주고있다.


騈儷體병려체란 騈文병문·四六文사육문·四六騈儷文사육병려문이라고도하는데, 문장이 4자와 6자를 기본으로 한 對句대구로 이루어져 修辭的수사적으로 美感미감을 주는 문체로, 騈(변)은 한 쌍의 말이 마차를 끈다는 뜻이고 儷(려)는 夫婦라는 뜻으로 쓰여진 말이다


後漢, 中,末期에 시작되어 魏·晋·南北朝를 거쳐 唐 중기까지

유행한 문체로, 변려문이라는 명칭은 唐宋八代家의 한 사람인

柳宗元의 《乞巧文》중 “騈四儷六錦心繡口”라는 구절에서 유래되었다.


이 글은 五句형식의 絶句를 취하고 있지만 내용상으로

변려문으로 위대한 예술가 신사임당께서 시문 그 자체

만큼이나 流麗한 草書로 작품화 시켰으리라.

그분의 예술적 난숙함이 경이롭다.


三連作詩로서, 拙人이 편의상 春.夏.秋 三季節로 보기 편리하도록 나누어 보았다.



권석주(권필)초서 시1수

古寺詠懷고사영회 -權石洲권석주(權 韋+畢권필)-


古寺飜經又一春고사변경우일촌

옛 절에서 경전을 뒤적이며 또 한해의 봄을 만나

已將甘露洗根塵이장감로세근진

부처님 은혜로 뿌리 박힌 속된 티끌을 씻으려고 하였지

自從愛色頭陀去자종애색두타거

스스로 色界를 사랑하여 중 따라 고행 떠난 뒤로

解眞空有幾人해진공유기인

참된 空을 능히 해탈한 자가 몇이나 되었던가?


권필의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汝章여장.

호는 石洲석주로 松江송강,

鄭澈정철문인으로 과거에 뜻이 없어 詩酒시주로 낙을 삼고,

가난하게 살다가 童蒙敎官동몽교관에 천거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끝내 취임하지 않았다.

광해군 妃비,柳氏유씨의 아우 柳希奮유희분 등

戚族척족들의 방종을 宮柳詩궁유시로써 비방하자

광해군이 大怒대노하여 詩시의 출처를 찾던 중,

1612년 金直哉김직재의獄事옥사에 연루된

趙守倫조수윤의 집을 수색하다가 그의 시가 발견되어

親鞫친국 받은 뒤 유배되었다.

귀양길에 올라 동대문 밖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주는 술을폭음하고 이튿날 죽었다한다.

1623년 仁祖反正안조반정후 사헌부지평에 추증 되었으며,

光州광주 雲巖祠)운암사에 배향 되었다.

《石洲集석주집》과 한문소설 《주생전》이 현재 전한다.

참으로 보기 드문 지조와 지사형 인간으로

후인들에게 많은존경을 받았고 지금도 지사로 追尊되고있는 인물이다.

楊士彦양사언(1517-1584)의 초서

飄飄靜上人표표정상인

표표히 떠나가는 靜이란 이름의 스님은

橫吹紫鸞笙횡취자란생

붉은 난새(하늘의 天子새)타고 피리소리 바람에 부쳐 보낸다.

披雲呼我道피운호아도

그는 구름을 헤치고나와 내 불러 말하기를

自是安期生자시안기생

나 자신은 옛날 신선이라고 일러지던 安期生이라네.

-蓬萊翁書(봉래옹 서씀)-

안기생은 중국 진시황 때 신선으로. 진시황이 불사약을 구 하자.

그는 '자신을 천년 뒤에 봉래산에서 만나자고 하고

東海동해로 떠나 버렸다한다.

뒷날 漢武帝한무제 때 李昭君이소군이라는 사람이

동 해에 노닐다가 안기생이 오이만 한

큰 대추를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이야기는 전한다.

이를 봉래,양사헌은 위 시에 인용하여

고고하고 청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깨끗한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양사언의 본관은 淸州청주양씨로.

자는應聘응빙이며 호는蓬萊봉래다.

1546년(명종 1) 式年文科식년문과에 병과로 大同丞대동승을 거쳐

三登縣監삼등현감 ,平昌郡守창평군수 ·江陵府使강릉부사·

함흥부사·철원군수 淮陽회양군수를 지내는 등 지방관을 자청하였다.

자연을 즐겨, 회양군수 때 金剛山금강산 萬瀑洞만폭동 바위에

蓬萊楓嶽봉래풍악 元化洞天 8자를 새겼는데 지금도 남아있다 한다.

安邊안변군수로 재임 중 智陵지능의 화재사건에 책임을 지고 귀양 갔다가,

2년 뒤 풀려 나오는 길에 병사하였다.

詩와 글씨에 모두 능하였는데, 특히 草書와 큰 글자를 잘 써서

安平大君안평대군·金絿김구 ·韓濩한호 등과 함께

조선 전기의 4대 서예가로도 전해져 내려온다

작품집에 《蓬萊詩集봉래시집》이 있고,

작품 중에는 많이 알려진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등이 있다.

그가 고향 포천 금수정을 사랑하여 지은

칠언절구 한 수를 감상해보며, 이 글을 맺을까한다.

金水亭금수정

十年塵土십년진토 如絲여사

십년 간 속세에 사노라니 귀밑 털 실 같은데

一笑일소 娛問幾時오문기시

한 번 웃는 기쁨인들 몇 때나 될까

晩向江湖訪漁父만향강호방어부

늙으막에 강과 호수로 어부를 찾아가니

白鷗心事少人知백구심사소인지

백구와 같은 마음을 아는 이 적네.

이 시에서처럼 속세에서의 삶은 질곡이었다.

웃음과 기쁨을 모른 채 바쁘게만 살아온 생활이었다.

늘그막에 부질없이 늙어만 가는 몸을 추슬러

고향 땅에 이르렀을 때는 '백구와 같은 마음'을 아는 이 적다고 하였다.

세속에 있으면서도 권력이나 물욕을 떨치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그의 심정을 누가 헤아리겠는가.

고결함·고귀함·호탕함은 자신이 현실세계에서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이상이다.

백로나 백구는 바로 이러한 속성의 상징적 존재이다.

이 시에서의 '백구'도 그의 현실적 자아가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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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금수강산 2015.09.3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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