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St Petersburg 에르미타쥐박물관 미술작품

금수강산 0 1,417 2015.09.07 11:12

상트 페테르부르크- 세계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에르미타쥐 박물관 (겨울궁전)

세계 3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라는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 예술품을 골고루 소장한

예르미타시는 바로크 스타일의 기품있는 궁전으로 제정 러시아 황제의 거처였던

 겨울 궁전과 네 개의 건물이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이 궁전은 원래 이처럼 방대하지 않았지만 표트르 대제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은 후 러시아 황실과 귀족들의 피비린내 나는 당파 싸움 끝에 제위에

오른 표트르 대제의 딸 Jason이 오늘날의 겨울 궁전을 건설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예카테리나 대제 때에 문화의 황금기를 맞는다.

그녀는 밖으로 실내 정원이 나 있는 ‘시계의 방’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때 그녀는 겨울 궁전을 프랑스어로 ‘예르미타시’(은둔지, 인적이 없는 방)라고

 즐겨 불렀다고 한다. 이것이 예르미타시 명칭의 유래이다.

1764~1787년 예카테리나 대제는 궁전 옆에 ‘소(小)예르미타시’와 ‘구(舊)예르미타시’

를 건설하고, 겨울 운하를 따라 그것을 연결해 라파엘 회랑을,

그리고 1783~1786년에 예르미타시 극장을 만든다. 1799~1851년 니콜라이 황제가

 화랑을 하나 추가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신(新)예르미타시이다.

예르미타시가 출현한 1764년 당시 베를린의 네고니안트라는 갑부가 부채 대신

자기의 미술 소장품 225점을 러시아로 가져왔다. 일찍이 스몰니에 최초의

 러시아 여성 학교를 세울 정도로 계몽주의에 심취했던 예카테리나 대제는

서유럽의 고품격 삶의 양식에 비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러시아 귀족들의

 생활 문화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 등의 부유한 귀족들과

 자본가들은 예술 작품들을 수집하여 개인 화랑에 소장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는 개인 화랑은커녕 박물관조차 전혀 없었다.

이에 예카테리나 대제는 황제인 자신부터 화랑을 열기로 마음먹고 다양한 소장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그림들을 전시할 곳이 없어 러시아 최초의

박물관인 쿤스카메라에 임시로 보관했다.

그 후 예르미타시에 미술관이 설립되면서 카벤첼레 공작(1768), 브를리 남작(1769),

크로자 남작(1772), 월 폴 총리(1779), 보뎅(1781), 나폴레옹의 황후 조제핀(1814)

등의 값진 소장품들을 구입했다. 그로 인해 예르미타시는 예카테리나 대제 때

이미 2,000여 점의 예술작품이 소장된 일류 화랑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예르미타시는 니콜라이 1세의 무지로 1,000점이 넘는 작품들이 경매에 나오게

 되는가 하면, 사회주의 혁명 때는 화랑이 아닌 임시정부 회의장소로 사용되기도 하고,

수도가 모스크바로 옮겨지면서 모스크바 국립표현박물관에 많은 예술품들이

옮겨가는 등의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1922년부터 국립 예르미타시 박물관으로 명명된 이곳은 현재 1,020여 개의 방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루빈슨, 피카소, 고갱, 고흐, 르느와르

등의 명화가 전시되어 있고, 이탈리아 등지에서 들여온 조각품들과 이집트의

 미라부터 현대의 병기에 이르는 고고학적 유물, 화폐와 메달, 장신구, 의상 등

300만 점의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고[1] 지붕 위에는 176개의 조각상이 있다.

가장 볼 만한 것은 서구 미술의 전시품으로 러시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터키, 인도, 중국, 비잔틴, 일본 등 세계의 고대 유물과 예술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고,

 고대 러시아 문화와 스키타이 문화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또 제정시대의 보석과 왕관

 등도 지하 보물실에 전시되어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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